유미._. 2025. 3. 1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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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5대 왕, 철종 – 농민에서 왕으로 오른 비운의 군주

철종(哲宗, 1831~1863) 은 조선의 제25대 왕으로,
평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다 왕위에 오른 특이한 이력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꼭두각시 왕으로 평가되는 비운의 군주
조선 후기 사회 혼란과 농민 봉기 속에서 왕권이 약화된 시대의 상징

오늘은 철종의 생애, 즉위 과정, 그의 통치기 특징, 그리고 역사적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 철종의 출생과 성장

  • 출생: 1831년, 전계대원군의 아들 (왕족이긴 하나 멀어진 혈통)
  • 본명: 이원범(李元範)
  • 어린 시절:
    • 아버지와 함께 강화도에서 평범한 농민처럼 생활
    • 조선 왕실과 멀리 떨어진 삶 → 문자, 학문과는 거리가 먼 생활

특징:
✔ 왕족 혈통이지만, 정치·학문적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함
✔ 세도정치로 인해 왕권이 약화된 시기, 정치적으로 영향력 없는 인물로 평가됨

그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철종의 정치적 한계로 이어짐


👑 철종의 즉위 과정 – 꼭두각시 왕의 등장

🔹 1. 헌종 사후,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필요에 의해 왕위에 오르다

  •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사망
  • 안동 김씨 세도 가문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혈통상 적절하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인물을 찾음
  •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이원범(철종)을 왕으로 추대
  • 즉위 후 철종(哲宗)이라는 묘호를 받음

의미:
왕권은 약하고, 외척 가문(안동 김씨)의 권력은 절대적철종은 사실상 안동 김씨 가문의 꼭두각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됨


철종 시대의 사회 혼란과 민란

🔹 2. 세도정치의 폐해와 농민 봉기

철종 재위 시기,

  • 안동 김씨를 비롯한 외척 가문의 권력 독점
  • 부정부패, 탐관오리의 횡포, 농민과 민생 피폐
  •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면서 각지에서 농민 봉기 발생

📌 대표적 사건:
진주민란(1862) → 삼정(三政: 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농민들이 봉기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조선 후기 최대의 농민 운동으로 발전

의미:
조선 후기 몰락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 ✔ 철종은 민란 진압과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질적 권한이 약해 실효성 부족


🔹 3. 삼정이정청 설치 – 개혁 시도

  • 1862년 삼정이정청 설치 → 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한 기구
  • 농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 시도

하지만:
✔ 세도 가문의 방해와 실질적 통치력이 부족하여 개혁은 실패

철종은 사회적 혼란 속에서 무력한 군주로 남음


철종의 최후와 고종 즉위

  • 1863년, 철종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
  • 후사 없이 사망 →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이명복)이 즉위
  • 흥선대원군 집권기 시작 → 조선 후기 정치 개혁 시발점

🏆 철종을 둘러싼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평민적 삶에서 왕위에 올라 백성의 고통에 관심 안동 김씨 외척 세력의 꼭두각시 왕으로 왕권 약화
삼정이정청 설치 등 민생 개혁 시도 실질적 권력 없는 무기력한 통치
농민 봉기 등 시대적 혼란 속에서 고통받는 백성의 목소리를 경청 세도정치와 사회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함

 

철종은 조선 후기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왕권 약화의 상징적 인물


🗝 마무리 – 철종, 비운의 군주로 남다

철종은
농민에서 왕으로 오른, 조선 역사상 가장 특이한 출신 배경을 가진 왕
세도정치의 틀 속에서 무력한 꼭두각시 왕으로 남은 비운의 군주
민생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권 없는 상황 속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함

📌 조선 후기 몰락의 시대상과 세도정치의 폐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

💬 여러분은 철종의 삶을 시대의 피해자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스스로 개혁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왕으로 봐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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